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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Art

반추: 미얀마 예술과 사회적 변화를 통해 나를 들여다

by Rain Spell 2024. 4. 11.

 

2019년  즈음 쓴 글입니다. 한국의 현대 역사와 비슷한 면이 많은 미얀마를 통해 지금 여기를 생각해 보고자 썼습니다. 어딘가에 기고를 하기 위해 쓴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납니다.  

 

반추: 미얀마 예술과 사회적 변화를 통해 나를 들여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것 같았다.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갔던 시장 풍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시끌벅적한 노점상들과 냉장고가 없어 좌판에 고기를 늘어놓은 시장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맞닥뜨리게 했다. 10년 전 양곤에서 받은 첫 느낌이다. 쉐다곤 파고다의 황금빛 스펙터클이 주는 경외감과 인근 재래시장의 번잡함, 매연 가득한 양곤 시내 풍경은 나를 20여 년 전 한국으로 데려다놓은 느낌이었다.

 

200927일 양곤문화예술대학 초청으로 얼마 전 작고하신 전수천 선생과 함께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다. 당시 우리 일행을 맞이하고 일정을 함께 보낸 이가 이번 전시에 참여한 아웅 모뇨 투 선생이다. 미얀마전통예술공예협회를 방문해 자리에 모인 4-50명 미얀마 예술가들에게 전수천 선생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고 미얀마 예술가들은 미얀마의 미술을 소개했다. 이후 양곤문화예술대학을 방문해 간담회를 갖고 양곤 시내 여기저기를 답사했다.

 

대학원생으로 현대미술을 공부하던 필자에게 그들의 작업은 전통 양식을 고수하는 미얀마 회화의 폐쇄성이 두드러진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유튜브에 영상 작업을 싱가포르 지인을 통해 업로드한다거나 소수 현대미술가들의 저항적 예술은 주로 기록이 남지 않는 퍼포먼스로 이루어졌음을 안다. 다음해 20101월 양곤문화예술대학 초대로 전수천 선생과 나는 아시아 전통 회화에서 전통안료의 사용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필자는 당시 대학원생으로 두 달 간 발표 준비를 하고 한반도 고대부터 안료를 사용한 회화의 변화상을 발표했다.

 

두 번째 방문을 통해 모뇨 선생을 비롯한 많은 미얀마 작가들과 친분이 생겼고 친구가 된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다시 방문할 기회를 모색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식당이든 카페든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내가 질문하면 미얀마 작가들은 누가 들을까 목소리를 낮추어 설명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20079월에 민주화 시위가 벌어져 일본인 기자 한명을 포함해 2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이야기했다. 공식 언론은 십수 명의 사상자만이 발생했다고 발표했지만 현지인들의 전언은 필자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리고 2011년 미얀마 의회는 군인출신 테인세인Thein Sein을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개혁 개방을 시작했다.

검열을 폐지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했지만 예술가들은 비관적이었다. 201511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70퍼센트 이상 의석을 차지하며 총선에서 승리해 단독집권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군부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고 과도기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해마다 미얀마를 방문하면서 미얀마 사회가 변화해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치마 형태의 전통 의상 론지는 미얀마의 첫인상이었다. 거의 모든 이들이 론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지만 최근 젊은이들은 청바지와 미니스커트를 더욱 선호하는 듯하다. 사원건축과 백년이 넘는 빅토리아풍 건물로 유명한 양곤의 거리 풍경도 급속히 바뀌어가고 있다. 양곤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사쿠라타워보다 수배나 높아진 건물이 속속 들어서면서 푸른 숲처럼 보이는 양곤의 스카이라인이 달라지고 있다. 택시비는 1000Kiat에서 30005000짯으로 올랐고 물가가 요동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양곤 젊은이들은 이러한 변화를 환영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2013년 한국 작가 6명과 양곤 뉴제로아트스페이스에 한 달 동안 머물며 우리는 미얀마 작가들과 이런 변화의 속도에 대해 토론했다. 뉴제로아트스페이스는 미얀마에서 가장 전위적인 그룹으로 활동하던 작가 에이코 Aye Ko2008년 양곤에 문을 연 공간이다. 젊은 예술가들을 양성하면서 그들의 활동 기반을 마련해주는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한 현대미술센터였다. 우리는 최근 미얀마의 변화와 그 활력을 지켜보며 압축성장의 폐해와 급속한 변화로 인해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과 지켜졌으면 하는 것들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는 한 달 동안의 체류를 정리하는 전시 ‘Touch’의 결과물이 되었다.

 

미얀마 예술 가운데 회화는 특히 전통이 깊고 강하다. 풍부한 광물 자원과 식물자원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안료가 발달했고 식민지 시대 유입된 서양의 회화기법은 20세기 중후반 독재정권의 고립 정책 속에서 그들 나름의 미감을 꽃피웠다. 그래서 미얀마를 미술의 갈라파고스라 부르기도 한다. ‘왜 혼란한 세상을 그림에 까지 담아야 하나, 미술은 아름다워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사람을 그린다는 그들의 항변은 한편으로 그들의 상황을 리얼하게 드러내주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회화 작품을 보노라면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한국 70, 80년대 작가들을 떠올리게 되고 사실적인 그림들은 한국의 극사실주의 회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최근 미얀마의 미술 지형도 변화를 맞고 있다. 작가 제제투 Zay Zay Htut는 닫힌 문의 자물쇠를 아웅산 수치 여사가 그려진 열쇠로 여는 작업으로 수치 여사에 대한 기대와 미얀마의 닫힌 문을 여는 기대를 표현한다. 지금은 인플레이션으로 사용하지 않는 동전을 작품에 등장시키며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통해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킨졸라 Khin Zaw Latt, 아무것도 하지 않고 권력만 붙잡고 있는 군인들을 풍자하는 민조 Min Zaw 등 최근 작가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언급을 화폭에 담기 시작하고 있다. 싱가포르, 뉴욕 등 해외 컬렉터의 러브콜을 받는 이들의 작품은 양곤 보족시장의 골동품 상점에서 복제본으로 팔리기까지 한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아닐까? 그리고 결국 하나의 타임라인 위에서 다른 위치에 서있는 것을 아닐까?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일본은 한국의 미래를 유추하게 만들고 미얀마는 내가 겪었던 한국의 변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고 서로를 통해 나를 확인할 수 있다면 미래를 우리의 손으로 함께 그려갈 수 있지 않을까? 같은 타임라인 위에서 서로 만나 함께 미래를 상상하고 그려간다면 목적지가 불분명한 변화와 개발, 발전을 재고하면서 실제로 우리의 목적지를 다시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식민지배와 군사독재, 민주화에 대한 열망, 급격한 자본화 등 한국과 미얀마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닮은꼴을 지녔다. 서울의 휘황한 도심 풍경에서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의 기억을 떠올리기 어렵듯 은둔의 나라 미얀마의 소박한 회화도 곧 미술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지 모른다. 파리와 뉴욕을 이어 런던과 베를린의 미술 신을 변변한 변용도 없이 옮겨놓는 서울의 현대미술 현장이 떠오른다. 양곤의 이 소박하고 열정적인 작가들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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