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21년 3월 31일 동양일보 풍향계에 게재한 글입니다. 동양일보 게재 링크는 글 아래에 있습니다.
미술과 시장
어떤 작품이 수백, 수천 억에 거래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로또 당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격의 그림이 거래되고 있다. 2019년 한국 미술시장의 거래금액은 총 4,147억 원으로 어찌 보면 기사에 나오는 그림 두세 점과 비슷한 규모다. 한국의 껌 시장이나 떡볶이 시장 규모와 비슷하다고도 하는데 세계 미술 시장과 비교하면 여전히 0.3~0.5퍼센트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이 시장조차 진출하지 못하는 예술가들이 대다수임을 생각해 보면 씁쓸함을 넘어 답답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문득 신문에 보도되는 그림 몇 점 값이면 기후 문제나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렇게 미술작품은 비싸게 팔리는 것일까?
유태계 독일 학자인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예술의 자율성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를 언급하는데 결론적으로 예술의 자율성은 ‘기성품’인 데서 기인한다고 한다. 이 말은 근대 이전 주문생산 방식으로 거래되던 미술이 시장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공고화되면서 기존의 후원 시스템에서 이탈된 예술가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작품을 제작하는 점에서 자율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미술도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일부분이며 괴짜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기행이나 창의성의 신화 또한 시장에서 가격으로 환산된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최초의 그림 시장은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열렸다. ‘플란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한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리심’ 그림이 있는 벨기에의 안트워프 대성당이 운영한 장터에서는 미술 작품도 팔았다고 한다. 이후 17세기를 거치며 식민지 교역과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 지역에서 미술 작품이 거래되면서 렘브란트 같은 몸값 높은 미술가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도 익히 잘 아는 바다. 인상주의자들에 대한 전설적인 재평가, 특히 반 고흐처럼 ‘예술에 인생을 바친’ 이들과 기행을 일삼던 모더니스트들의 일화가 미술을 더욱 신화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돈은 이렇게 신화화된 ‘이미지’를 사들이는 매개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바꿔볼 수 있다. 미술 작품은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하고 묻기보다 왜 이렇게 비싸게 사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최근 ‘대체 불가능 토큰 NFT(Not Fingible Token)’ 기술과 접목해 복제 불가능한 디지털 이미지가 고가에 거래되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기술이 이미지를 다루는 실험적 시도가 높은 가격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미술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거나 작품이 가진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높은 가격이 매겨질 수도 있다. 글머리에 언급한 자본주의는 예술의 자율성뿐만 아니라 심지어 저항과 혁명성마저 상품화한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예술은 가치와 아이디어마저 상품화하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장식해주는 밑무늬에 지나지 않는다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자본주의적 시장이 다양한 비시장적 요소의 개입으로 혁신을 거듭해왔듯, 미술은 다양한 존재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한다. 코로나 감염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6월 말 세계적 경매회사 소더비는 메이저 업체 최초로 런던을 중심으로 파리, 뉴욕, 홍콩을 연결해 실시간 스트리밍 경매를 진행해 큰 성과를 거뒀다. 우리나라도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작가 스스로 소비자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작가미술장터’ 제도를 개설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과 함께 코로나 이후의 작품 형식과 환경에 대해 작가와 기획자가 더욱 고민해야 할 때다.
Rain Sp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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