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23년 7월 2일 동양일보 풍향계에 게재한 글입니다. 동양일보 게재 링크는 글 아래에 있습니다.
엔데믹과 미술, 공간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에게 유례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봉쇄와 격리, 죽음과 공포를 경험하게 했고 많은 부분 생활 방식을 바꾸었다. 마스크를 벗는 것이 더 어색해졌을 무렵 엔데믹은 시작되었고 마스크 없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팬데믹은 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미술 소비가 늘어 시장이 활황을 맞기도 했고 실제로 전시장을 방문하는 일이 힘들어짐에 따라 온라인으로 전시를 관람하는 방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문을 닫은 전시공간도 많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는 공간, 공공공간에 대한 성찰이 지금 다시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2024년, 30년을 맞는 16회 광주비엔날레 전시감독이 정해졌다. “관계의 미학”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출신의 니콜라 부리오가 열 여섯 번째 광주비엔날레의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그는 ‘판소리-21세기 사운드스케이프 (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를 주제로 삼아 전시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판소리의 형식과 판소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주목해 이를 통해 팬데믹 이후의 ‘공간’에 대한 화두를 던질 것이라고 한다. 특히 “기후변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은 인류와 공간의 관계를 급격하게 변화시켰고 공간에 대한 달라진 우리의 감각과 지각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야기 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스타 큐레이터인 그는 팬데믹 이후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다루는 예술 작품을 판소리의 형식을 빌어 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 광주 비엔날레관 뿐만 아니라 광주의 대안공간, 전시장, 카페, 공원 등 다양한 장소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3년 만에 열린 올해 광주비엔날레 또한 처음 시도된 국가관 프로젝트와 함께 광주의 여러 공간들이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사용되었고 올해 9개였던 국가관은 내년에는 20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이걸 언제 다보나’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다양한 공간, 다양한 성격의 공간에서 벌어질 전시들은 기대를 갖게 한다.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미술 행사라는 아우라와 더불어 비엔날레관이라는 공간은 비엔날레를 권력화 한다. 30년 간 다양한 실험을 거치면서 세계 3대 미술 행사라는 이야기도 듣지만 어쩌면 30년 간 광주비엔날레는 자국의 미술가들은 소외시키거나 혹은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편입시키는 권력기관의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것이 경쟁이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소수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비엔날레 감독들이 과연 광주에서 벌어지는 전시를 위해 국내 작가들에 대한 리서치를 얼마만큼 해왔는지 할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한국 미술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몇몇의 스타 작가 외에는 서구의 기준으로는 변방이다.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헤게모니 구조상 변두리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많은 예산과 노력으로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적인 행사로 인정받고 있고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많은 부분 한국 미술의 수준을 끌어올린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30년을 맞는 비엔날레는 다시 ‘백인, 남성’ 큐레이터를 감독으로 선임했고 ‘백인, 남성’만으로도 비판을 받아 마땅할(?)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니콜라 부리오를 통해 또 다른 미술의 시도를 보여주려고 하는 듯 한데 결과는 조심스럽게 기다려야 할테다.
나는 그가 판소리라는 상징적인 소재의 구조를 전시에 차용하고 또 판소리의 특징, 공공성을 제대로 파악해 시대를 초월하는 공간에 대한 물음을 해주기를 바란다. 광주 비엔날레는 보도자료를 통해 “예술이라는 공간은 시대와 문명을 초월해 현실을 재구성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사회적 삶과 시공간을 재창조할 수 있는 곳”이다 라는 부리오 감독의 말을 전한다. 너무 근사한 말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보다 많은 한국 작가들 혹은 아시아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잘 구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를 할 수는 없다. 남은 시간 보다 많은 한국 작가들을 만나면서 유럽과 미국이 아닌 다양한 곳의 공간과 소리, 시대에 귀 기울여 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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